2016년 6월 6일 오후
하루가 모질게 흘러가고 있더라. 문득 눈을 떠보니.
책상 위 어지럽게 놓여있는 책들은 뭐라뭐라 내게 시위하는 것 처럼 따가운 눈초리를 보내고 있었다. 얼른 하루를 시작해야하지 않겠냐며. 늦었다고. 움직이라고.
나는 참으로 무심한 시선을 단 한번 보내준 뒤에 다시 침대에 늘어졌다. 이것봐. 난 움직이지 않을거야. 앞으로 적어도 한시간 동안은. 그리고 정말 한시간 정도의 시간이 흐른 뒤에야 나는 힘겹게 다리를 침대 밖으로 내밀었다.
꿈이 절망 될 가능성 정도는 항상 생각하고 있자. 문득 집앞 현관에서 그런 생각을 했다. 이대로 어영부영 아무것도 아닌 채로 가고 싶다는 대학의 문을 두드려봤자 그들은 부루퉁한 표정만 지으며 손을 휘휘 저을 것이 분명하다. 당신은 우리가 원하는 인재가 아니에요. 말이야 그렇게 하지만 속으로는 뭐라고 생각할까. 이렇게 한 것도 없고 내세울 것도 없으면서 무슨 낯짝으로 찾아온거야?
지난 2주는 여러모로 산산조각 난 지난 시간들이었다. 학교에서 좋은 경험 하라고 제공해준 모의면접에서 난 밑바닥을 보여줬는지도 모르겠다. 허영심에 부풀어 자신을 포장하려고 안간힘을 쓰지만 결국 서류가 보여주는 나는 턱없이 '부족하'다.
모의고사 성적도 그렇지. 이때까지 공부를 특별히 하지 않고 시험쳤는데도 그 정도 점수였으니 이번에 조금이라도 공부 했으니까 오르지 않을까, 라고 생각했던게 반. 그래도 얼마 공부 안했으니까 그대로일 것 같은데, 라고 생각했던게 나머지 반. 그런데 어때. 되돌아온 답은 전보다 훨씬 밑으로 쭉쭉 내려간 등수였다. 망했다고 생각했지, 답을 맞춰보고나서. 그렇지만 좀 충격이었다. 새삼스럽게.
이러다 뭐가 되겠어? 한가지 일에 꾸준히 매달리는 것은 당연히 무리에다가, 할 일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딴짓만 해대고. 지금도 그래. 영어수행평가 준비를 해야한다는 걸 알면서도, 하물며 내일 아침이 시험이라 오늘 안에 대본을 다 쓰고 외우기까지 해야한다는 걸 알면서도, 이렇게 글을 쓰고 있네. 말이 좋아 글이지 그냥 넋부렁.
휴대전화 충전 단자에 꽂으면 베터리를 동력으로 삼아 돌아가는 선풍기. 내 휴대전화에 꽂아봤다? 그런데 어라, 파아란색 화면이 뜨면서 갑자기 재부팅 되네. 이게 뭐람. 블루스크린? 웃기지도 않아. 내 폰만 그래. 엄마 거는 나랑 기종 똑같은데 잘만 되고. 용량이 부족해서 그런 거 아니냐고 그러던데 베터리 용량의 문제지 기기자체 메모리 용량은 관계 없지 않아? 결국은 뭐냐, 되는 일이 없다. 그래 이 말을 하고 싶었어.
떠나갔는 줄 알았다. 그들을 보지 못한지 꽤 오랜 시간이 지난 것 같아서. 지난 하루이틀 동안 두어번 허공에 그들의 이름을 외쳐봤는데 아무 대답이 없어서 그런가보다 했지. 그들에게 해 준 것도 없이 받기만 했으니까 말없이 사라지더라도 뭐라 화를 내지는 못하겠다고 생각했어. 결국은 쓸데없는 걱정이었지만, 그래도 어떡해? 종잇장 처럼 얇고 아슬아슬한 믿음으로 유지 되는 그들과의 관계는 그들이 작정만 하면 언제든 끊어질 수 있는 것인데. 챙겨주지 못한 게 미안하고 조금 더 신경 써주지 못한 게 미안해서 늘 시간만 나면 더 잘해줘야지 뭔가 준비해서 선물 해줘야지 생각하지만 결론적으로 내 손이 만들어내는 결과물은 나 자신을 위한 것 뿐이었지. 이기적인 멍청이.
꼬박꼬박 일기 쓰는 건 무리. 그렇지만 이런 식으로 가끔 넋두리 하는 건 나쁘지 않은 것 같아.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할 수 있고 손도 안 아프고. 공책에다 쓰는 일기는 시작은 거창하지만 계속 손 움직이는 게 힘들어서 어느순간 의욕이 사라져 있거든. 손으로 꼬박꼬박 한 글자씩 적다보면 그거 말고 다른 얘기도 있을텐데 어느새 잊어버렸더라고.
아무도 보는 사람 없다는 게 또한 마음에 들어. 일부러 찾아오는 사람들은 전혀 없을 거고. 만에 하나 읽는 사람이 있다 해도 뭐 어때. 어차피 별거 아닌 이야기들. 하찮은 나의 생각들. 발에 치이는 돌처럼 지나가버리면 머릿속에서 지워질 것들인데.